유학 가운데 배우는 것은..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라는 명제를 삶으로 배우는 것이다..

돈에 좌지우지 될 수 없고, 명예에 좌지우지 될 수 없다..
I live by faith.. Only by faith..

짧은 10일간의 생활동안..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만나도 경험하고..
그런 경험을 하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욕심으로 인한 연약한 모습도 발견하게 되고..

언제쯤.. 진정한 Lordship을 실천할 수 있을까..

다음은.. 오늘 전화를 통해서 감사한 말씀을 전해주신 김일승 목사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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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승 목사님 '묵상의 숲' 홈페이지에서.. (http://kissdei.cyworld.com)

   유학이 길어질수록 많은 유학생들에게 유학은 생존의 치열한 전투장이 되어버립니다.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재정은 한 가족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돈이 있으면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돈은 자녀들의 교육과 성장의 질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정된 재정으로 살아가는 유학생활은 흔히 생존 게임(survival game)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해야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재정의 제약을 뛰어넘어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이 되어 버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유학이 더 나은 생존을 위한 시간으로만 사용되는 현실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유학생으로 살아가면서 배운 생존법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학을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요?

   첫 번째로 생존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의 조건에 대해서 간과하시거나 무시하시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생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알려주시길 원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 여가를 즐기는 것 등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어느 누가 먹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쉬지 않고 일만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일상의 모든 삶보다 훨씬 더 중요함을 믿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돈이 있거나 없기 때문에 여가와 교육과 주거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재정의 여부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생존과 관련된 결정을 해나가는 것을 배우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재정이 있다면 누구나 하고 싶고, 또한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포기하는 일은 한 번에 발휘되는 용기가 아닌 지속적 시행착오를 거쳐 얻게 되는 지혜입니다. 재정이 없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과감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함을 일상에서 배웠을 때만 가능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재정이 있지만 그것 때문에 교만하지 않고 여전히 없을 때와 같은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없을 때도 여전히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결과입니다. 재정이 없어도 요동하지 않고, 매일 매일을 낙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수없는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견고함입니다.

   이처럼 재정의 유무가 우리의 요동함과 판단과 행동의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뜻이 우리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기에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믿음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머리로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성도가 있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필요를 다 아시고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실제적인 상황이 되어보아야 정말로 그 말씀을 믿고 있는가가 드러납니다. 말씀이 한 사람의 머리에서부터 중심으로 옮겨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배우기에는 유학의 시간처럼 좋은 기회가 없습니다.


   두 번째로 생존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만족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유학을 하면서 원하는 것을 전부 누리며 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더 좋은 집에 살고 싶지만 억지로 학교 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더 좋은 차를 타고 싶지만 재정적인 부담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도 파는 곳이 없고,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의 기회를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어쩔 수 없이 타게 된 차를 타고, 어쩔 수 없이 살게 된 집에 살며,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음식을 먹고, 어쩔 수 없이 쓰는 물건들을 쓰며 살아가는 것이 유학생의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 차, 음식, 물건 등에 대한 불만족이 유학생들이 쉽게 표출하는 감정입니다.

   말로는 하지 않지만 이런 불만족은 우리의 영적 상태와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와 같은 것입니다. 사실, 감옥에서 있으면서 기뻐하고 찬송하는 수준, 쇠사슬에 매인 몸으로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함'을 배운 바울의 수준이 사실 성도들이 추구해야 하는 수준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환경적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영적 기쁨과 만족을 조금이라도 더 추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평생토록 환경에 따라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오르내리게 될 것입니다.

   더 좋은 환경은 영적 존재인 인간의 영혼에 지속적인 만족과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유학의 기간을 마친 유학생들은 반드시 유학의 시기보다 더 좋은 환경과 더 나은 재정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유학의 기간을 통해서 제약 가운데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환경에 노예가 된 채로 소비가 가져다주는 일시적인 만족과 기쁨만을 추구하며 속물처럼 살게 될 것입니다. 유학생에게 주어진 한계를 통해 영적 기쁨과 만족을 배워 어떤 불만족도 우리의 영혼을 좀먹을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인 요소가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더해줄 수 없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도 생존에 얽매이지 않은 영적 자유와 만족을 누리는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생존적 한계와 절박함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 사람은 생존 문제가 걸려 있을 때 가장 치사해지면서 가장 절박해집니다. 생존의 문제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입니다. 수없는 정보들을 수집해서 그 어려움을 넘어가고자 하는 사람, 일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찾아 몸으로 뛰며 한계를 넘고자 하는 사람, 아는 사람들의 도움을 얻고자 애쓰는 사람 등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한계를 넘어 서고자 합니다. 물론, 기도를 하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하나님이 개입하실 때까지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늦게 개입하신다기 보다는 사람들이 그 시간을 견뎌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한계와 절박함의 순간이 하나님을 향한 가장 진솔한 반응이 나올 수 있는 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근원적인 감정과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온갖 가식과 형식을 다 던져 버리고 아빠를 찾는 어린아이처럼 매어달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유학생의 생존의 문제가 온 가족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마치 온가족의 생명이 걸린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을 수 있는 충분한 반응은 야기할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가식 없는 의존과 완전히 무너진 영혼의 통곡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하나님에게도 하나님의 백성의 생존의 문제는 중요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녀가 굶어서 울부짖는 것을 미소를 머금으며 바라보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부모보다 더 큰 사랑과 긍휼을 가지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정말로 우리를 자녀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사랑과 긍휼로 끝까지 대하실 것임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적 한계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신실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은 치욕스러운 것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진정 자신의 자녀를 아시고 돌아보시는 아버지가 되심을 이때가 아니면 언제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유학 가운데 생존의 한계에 부딪친다면 일단 모든 것을 멈추고 아버지를 목 놓아 부르며 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개입하실 때까지 죽음을 기다리는 자과 같이 기다려 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심을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경험하십시오. 이것을 배우지 못하면 평생 하나님을 양아버지처럼 대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유학은 생존 게임이 아닙니다. 유학의 귀중한 시간을 더 나은 생존만을 위해 투쟁하는 기간으로 삼게 되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유학을 통해 생존을 넘어선 하나님의 말씀, 감각을 넘어선 영적 만족 그리고 한계 가운데 만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배운 사람은 학교에서 딴 학위보다 훨씬 더 귀중한 것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도록 조장하는 이 시대를 하나님의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Mok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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