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 중에 하나가 "소명, 사명, 비전" 이런 단어들이 아닐까 싶다. 각각의 뜻도 왠지 비슷해 보이고 해서, 교회에서 거의 혼동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어딘가에 정확한 definition도 없기 때문에, 목회자 분들끼리도 서로 각자의 정의에 따라 사용하신다.

  고등부, 대학부, 그리고 사랑리더십아카데미를 통해서 얻은 교훈 등을 가지고 나름 스스로 이 세가지 단어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그냥 내 마음대로 내린 것은 아니고, 말씀을 바탕으로 정의를 내리려고 노력했다. 그러고 나서 보니 내 스스로 나의 사명은 무엇이고 비전은 무엇인가에 대한 뚜렷한 개념이 생기고, 각각에 맞추어 기도하며 준비할 수 있는 유익을 얻을 수 있었다.


I. 소명(Calling)

  오스 기니스는 그의 저서 '소명'에서 다음과 같이 소명을 정의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께로 부르셨기에,
우리의 존재 전체, 우리의 행위 전체, 우리의 소유 전체가
특별한 헌신과 역동성으로
그분의 소환에 응답하여 그분을 섬기는 데 투자된다는 진리"


  조금 추상적이고 어렵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것과 '그분을 섬긴다'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말씀으로 본다면 이 두 말씀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먼저 선택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소명'인 것이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53: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53:21)

  이런 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같은 소명을 가지고 있다. 선택받은 백성이라면 모두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기에 모두 십자가 아래에서 동일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동일한 부르심'이지만 이 부르심은 '위대한 부르심'이기에 그 누구도 흔들수 없는 '강력한 부르심'이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3~34)

  오스 기니스는 기독교가 소명을 '직업'으로 격하시켜 버렸다고 했다. 즉, 우리는 종종 "나는 ~가 되는 것으로 부름 받았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서 '부르심' 보다는 '무엇으로'에 더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래서 오스 기니스는 소명을 '일차적 소명'과 '이차적 소명'으로 나누어 구분한다. 일차적인 소명은 그리스도에 의한, 그리스도를 향한,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면, 이차적인 소명은, 삶의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살고 행하는 것이다. 이는 '직업' 그 자체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며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자 답게 행동하는 가가 더 중요함을 말해준다.

  정리하자면 소명은 우리가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르심을 '들었기' 때문에 이미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것이고 우리는 그에 맞게 반응하면 되는 것이다. 


II. 비전 (Vision)

  이 비전이라는 단어는 청소년, 청년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하며 너무나 많이 남용된 단어이기도 하다. 그리고 '비전=직업=꿈'과 같은 단순한 관계로 인식되어 "넌 뭐가 되고 싶니?"의 교회 version이 "너의 비전은 무엇이니?"가 되어 버리기도 했다.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며 우리의 욕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게 하는 위험성이 있다.

  비전은 말 그대로 환상이다. 우리가 보는 무언가이다. 아니, 하나님께서 보게 하시는 무언가이다. 부름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상이다. 마치 우리가 퍼즐을 맞출 때 완성된 그림을 상상하며 맞추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이 비전이다.

  궁극적인 비전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천국에서의 예배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계 7:9~10)


한때 한국에서 열풍을 불었던 '비전'이라는 찬송이 그래서 이 말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원하는 꿈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며, 영광으로 가득한 천국에서의 예배이자 모든 믿는자들이 부르심에 가장 합당한 삶을 사는 모습인 것이다.

  이 요한계시록의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우리 삶의 자리에 이뤄질 것을 꿈꾸는 것이 우리 개인에게 주신 비전이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면 굉장히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은 단순하다. 창조의 질서가 회복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을 꿈꾸는 것, 북한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회복되는 것 등등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상이 있다. 현실의 모습을 봤을 때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완전하게 회복된 모습을 그리게 하시는 것이 바로 비전이다.

  결국 이 비전을 꿈꾸며 살기에 우리의 삶에는 '목적'이 생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개인 각자에게 맡겨진 일의 분량이 있다. 그것이 바로 비전과 사명을 연결시켜주는 링크이다.


III. 사명(Mission)

  사명은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삶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즉, 소명이 없는 자들에게는 사명이란 있을 수 없다. 사명의 기본 바탕은 그리스도인으로 불리움을 받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이다." (사랑의교회 공동체 고백 中) 세상으로 보냄을 받을 때, 그 누구도 아무 이유 없이, 목적 없이 보냄을 받지는 않는다. 모두가 보냄을 받을때 그가 일생동안 해야할 일에 대해 적힌 사명장을 받고 세상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명은 우리의 '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물론 직업 그 자체가 사명은 아니다. 단지 직업은 사명을 이루는 도구가 될 뿐이다. 예를 들면 크리스천 문화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사명이라면 음악가, 작가등의 직업은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또는 직업과 사명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는 것이 사명이라면, 자신의 직업과 관계 없이 주일학교에서의 봉사를 통해서 그 사명을 이룰 수도 있는 것이다.

  '사명'은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어 다시 세상으로 보내실 때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사명장을 펴 보면 우리가 왜, 무슨 이유로 이 땅에서 사는지를 알 수 있다. 사명장을 펴 나가는 과정이 우리의 인생의 초반부이다. 어떤 사람은 어릴 때 자신의 사명을 발견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발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 발견하는냐가 아니라 '발견했는가' 그 자체에 있다. 그러므로 사명을 발견하여 사명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 전체이다.

  흔히 자신의 사명과 비전을 당당하게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 스케일이 큰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간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 모두가 그런 거창한 사명을 받지는 않았다. 그래서 모두들 간증을 듣고 나면 그 순간에는 큰 도전을 받지만, 자신의 현실과 비교해 봤을 때 느껴지는 큰 괴리감으로 인해 다시 무기력함에 빠지곤 한다. 우리가 이런 느낌을 받는다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 성공스토리를 듣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사명의 위대함이나 영향력이 아니라 얼마나 그 사명을 좇아 사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IV. 소명, 비전, 그리고 사명

  그렇다면 이 세가지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가장 먼저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세가지 모두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부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보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꿈꾸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억지로 사명을 만들어내고 비전을 지어내는 노력을 해야 알게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것임을 먼저 인정해야만 한다.

  모든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소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소명 또한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꿈을 꾼다. 우리가 다 그릴 수도 없는 그 위대한 꿈 가운데 일부분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그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우리는 그 비전을 품고 열정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산다. 그리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가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소명, 비전, 그리고 사명을 묵상해보자.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서 그의 소명을 받았다. 
"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7:15)
  그리고 바울은 모든 서신서에서 각 교회에 임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나누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바울은 순교의 길을 떠나며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증언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이처럼 바울은 부르심에 순종했고, 비전을 붙잡았으며, 사명따라 산 믿음의 사람이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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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k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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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4 09:54

    비밀댓글입니다

    • 2010/04/24 13:54

      난 내가 글 잘쓰는거 같지도 않은데..
      말씀도 잘 못 읽고 있고..
      하나님과의 대화는 더더욱이나 요즘 꽝인데..
      흠..

  2. 2010/09/20 15:49

    참 좋은 글 이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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