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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9 배우자.. (8)

올해 안에 결혼하겠다고 선포를 해 놓은지라.. 그 선포가 믿음에 바탕을 둔 선포라면, 뭔가 올해 일어나겠기에..
정신차리고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번쩍... 그래서 간만에 김일승 목사님 말씀을 다 뒤져 읽어봄..
근데 정말 길다.. @.@


다음은 김일승 목사님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kissdei.cyworld.com)
(밑줄 그어진 부분은 제가 임의로 중요하다 생각되는 부분을 표시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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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결혼은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선택입니다. 한 번 선택한 뒤에는 무를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것이 결혼입니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결혼에서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잘못된 선택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커집니다. 또한 화목한 가정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하기 때문에 실패가 없는 선택을 위해 여러 상황들과 사람들을 비교하며 고민하기를 쉬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교와 고민을 많이 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대부분의 결과는 비슷합니다. 심사숙고한 끝에 결정을 하면 더 행복하고, 쉽게 결정하면 불행해지는 공식이 잘 통하지 않는 것이 결혼입니다. 자신과 꼭 맞는 사람과 결혼하면 갈등이 없고, 자신과 잘 맞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면 갈등이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혼은 어떻게 얻게 되는 것일까요?



첫 번째로 배우자를 선택하기 전에 세속적인 가치들과 영적 가치들을 명확하게 분별하고 선택할 수 있는 성경적 가치관을 선택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결혼과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통해 이루어지는 가정 안에서는 세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물론, 아름다운 외모는 결혼사진을 찍을 때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 아름다운 외모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외모가 결혼에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연예인들의 결혼이 수없는 외도와 이혼으로 얼룩진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혼을 행복하게 만들고 견고하게 만드는 것은 돈, 외모, 학력, 집안의 배경 등이 아닙니다. 결혼은 희생, 인내, 섬김, 복종, 겸손, 온유를 통해만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기본적인 외적 조건이 충족된 다음에야 내적 조건들을 따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외적 조건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 가운데 내적이고 영적인 가치들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교회에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그래서 배우자의 선택이 더욱 쉽지 않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영적 가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없기 때문에 세상적인 조건이 대충 맞으면 쉽게 결혼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크리스찬들은 세상적 가치뿐 아니라 영적 가치와 신앙까지도 갖춘 사람을 찾기 때문에 결정이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세상적 가치를 포기하는 순간에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감추인 보물은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게 됩니다. 진정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혼을 소망한다면 영적 가치를 위해 세상적 가치를 포기하는 결단이 먼저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갈등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구해야 합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많은 조건들을 따지는 이유는 갈등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사람을 찾는 사람은 성격이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있을 갈등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신과 성격이 다른 사람을 찾는 사람은 자신과 같은 약점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서 비슷한 실패를 반복하기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결혼의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고려하는 대상은 수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과 수고는 결혼한 뒤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모든 일에 활달한 성격이 좋아서 결혼했는데 결혼 후에는 답답하다면서 집 밖으로만 배회하는 배우자 때문에 고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격이 차분하고 안정적이라서 결혼했는데 이 사람이 가까운 사람에게만 쌓아둔 분노를 폭발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똑똑하고 정확해서 결혼했는데 배우자에게도 정확성과 획일성을 요구해서 고통스럽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아무리 고민한 뒤에 결정해도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전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결혼은 갈등과 실패가 없는 행복과 기쁨만이 가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결혼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의 가장 큰 축복과 선물은 두 사람 사이의 깊은 친밀감입니다. 하지만 결혼의 깊은 친밀감은 자아를 결혼이라는 제단에 바치는 희생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선물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자신의 자아를 타자를 위해 포기하고 죽이는 일입니다. 하나님 과의 관계의 친밀감도 얼마나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부부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자기 사랑이라는 죄성으로 똘똘 뭉친 두 사람이 만나 깊은 친밀감을 얻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은 갈등과 깨어짐과 용서와 회복의 반복적인 과정을 거쳐야지만 됩니다. 이런 과정을 얼마나 반복적으로 경험하는가가 친밀감의 깊이를 결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과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부부는 깨어지지 않은 자아를 가지고 서로 타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부부는 결혼이 가져오는 친밀감의 깊이와 만족을 절대로 누릴 수가 없습니다. 결혼은 깨어진 자아가 서로 연합되는 과정에서 타인들과는 구별되는 하나된 존재의 기쁨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갈등과 실패만이 결혼을 아름답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관계의 갈등과 실패는 고통스러운 일이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야기합니다. 또한 인간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죄성의 깊이 또한 더 깊어집니다. 친밀감의 욕구와 사랑은 잠시 자신의 내면을 감춘 무장을 해제하게 만들지만 이것은 더 깊이 상처받을 수 있고, 고통을 받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 사이의 갈등이 어느 다른 갈등보다 깊고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한 몸이 되기 위해 만난 두 사람이 원수보다 더 심한 관계로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겠다고 결혼한 사람을 향해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의 유일한 소망은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완전히 깨어지고 무너져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부가 함께 하나님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운다면 실패는 은혜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자원과 지혜가 의미 있을 때는 하나님의 약속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적 성취의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곳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결혼이 그렇습니다. 깊은 친밀감을 원하지만 그것을 성취할 수 없는 자아의 깊은 죄성이 드러나고 충돌하는 곳에서 꼭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전부터 하나님의 약속을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매어달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부부의 갈등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결혼을 만들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결혼과 같은 중요한 문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말씀을 깨닫는 영적 성숙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로나 결혼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시와 인도를 얻길 구합니다. 하지만 평소에 일상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말씀을 듣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중요한 문제에서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뜻을 분별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이미 그것을 자신이 간절히 원하고,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뜻이 강하게 서 있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자아의 욕구와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떤 것을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것을 따르지 않을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선택하라고 사인을 주시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결혼의 문제만을 두고 아무리 금식하고, 새벽 기도를 해도 근본적인 영적 변화가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결혼이나 진로의 문제에서만 하나님께 뜻을 간구하고 매어달리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우상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우상은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대상입니다. 인간이 원하는 것을 자아의 포기가 없어도 다 들어줄 수 있을 것처럼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화신이 우상입니다. 좋은 결혼을 위한 인도하심은 모든 인간이 원하는 욕망의 대상입니다. 만일에 그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그 순간에만 간구한다면 이 사람의 태도는 하나님을 우상으로 대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욕망을 위해 좌지우지 되는 분이 아닌 스스로의 뜻과 생각으로 움직이시는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생각과 뜻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기본적인 신앙의 성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중요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습니다. 문제가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인간 자아의 깨어짐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두 남녀의 결혼을 축복하길 원하십니다. 창세기 2장에서 아담과 하와의 결혼이 아담의 의도가 아닌 하나님의 의도와 준비를 통해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결혼을 중요하게 여기시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향해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라고 순간적으로 고백했던 말을 이제는 넘치는 죄악으로 가득한 우리는 단번에 고백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세속적 가치의 포기, 갈등과 실패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 자아의 깨어짐으로 얻게 되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가 선행되어야만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결혼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혼을 원하신다면 먼저 하나님과 말씀을 당신의 진정한 주인으로 모셔야지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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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마음도 예쁜 배우자를 찾고 있는 형제들에게



20대 청년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연애와 결혼입니다. 하지만 배우자를 찾는 잘못된 기준과 방법 때문에 만남과 결혼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형제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가장 많이 저지르는 잘못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는 얼굴도 마음도 예쁜 자매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형제들도 여자를 외모로 판단하는 기준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외모와 마음 뿐 아니라 신앙까지 좋은 자매를 찾기에 고민은 많아지고 확률은 낮아집니다.

물론 외모도 마음도 전부 아름다운 자매와 결혼한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인이 인정하는 외모의 자매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끊임없이 받아온 관심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교만한 자아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외모 때문에 교만해진 사람은 외모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들의 영혼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살아가는 이 세상의 풍조에 물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상에 물든 만큼 영혼과 인격의 성장은 반비례합니다. 이런 여자는 화려한 색으로 벌들을 유혹하지만 꿀을 주지 못하는 꽃과 같습니다. 이런 여자들과 관계를 깊이 맺을수록 영혼의 깊은 공허를 느끼게 됩니다.

일단 여자들의 외적 화려함에 정신이 팔린 형제들은 절대로 영혼의 아름다움을 감지할 수 없습니다. 예쁘고 섹시한 여자들에게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형제들의 관점이 왜곡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시각을 교정하지 않으면 절대로 아름다운 결혼을 가능케 하는 배우자를 만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미리 정해놓으신 짝을 찾으려는 노력입니다. 신앙심이 투철하다는 형제들 가운데는 자매들을 사귈 때 '당신이 배우자라고 하나님이 알려주셨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형제들은 자매들과 헤어질 때도 '당신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배우자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하나님은 선하게 인도하시지만 한 사람을 미리 정해놓고 알려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형제들은 하나님이 이미 정해놓으신 짝을 찾으려는 시각을 교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확신과 욕망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잘못 듣게 됩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배우자에 대한 확신은 결혼해 살면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특히 배우자 같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고 잘못될 경우에 하나님께 그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또한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분별력과 용기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요구하시며, 그 선택 배후에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과 섭리가 존재합니다.

결혼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섭리는 놀라운 것입니다. 한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을 이루고, 믿음의 자손들을 길러내는 것은 결혼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지만 이런 섭리는 문제가 없는 상황 속에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부분 갈등과 아픔과 눈물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성취됩니다. 문제가 없는 완벽한 배우자와 안전하고 행복한 결혼을 달라고  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감정이 안정적이고 삐지지 않는 여자를 찾으려는 노력입니다. 여자와 남자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대부분의 여자는 감성이 지성보다 우월합니다. 여자들에게는 어떤 상황에 대한 정답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대방과 자신이 잘 공감하는가가 훨씬 중요합니다. 하지만 남자들은 지성에 비해 감성은 잘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문화적으로도 남자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여자들이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것에 대해서 남자들은 당황하게 됩니다. 쉽게 울거나 삐지는 여자들 앞에서 남자들이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자입니다. 여자들의 참 마음은 그 요동하는 감정 아래 감추어져 있습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서 두려움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수치심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을 것인지를 시험한 뒤에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참 마음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삐져도 남자가 그것을 용납한다면 여자의 참 마음을 알게 됩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에게 있는 어느 정도의 감정적 불안정성을 남자들이 인내하고 용납할 때 여자들과 더욱 깊은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특히 자매들은 결혼해서 온전한 용납을 경험하게 될 때 점차 감정적으로 안정되는데, 남편의 사랑 안에서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전에 감정적으로 요동하지 않는 온전한 여자를 만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형제들에게 있어서도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영적 시각으로 자매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삶의 여정에서 받아들이고 분별할 수 있도록 평소에 민감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여자들의 불안정함을 따뜻함으로 받아들이고 품어 더 깊은 친밀감을 얻어낼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가져야 합니다. 결국 멋진 결혼은 좋은 여자를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여자보다 더 좋은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남자의 리더십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청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배우자를 찾는 노력만큼이나 더욱 형제들이 믿음의 가장으로 더욱 철저하게 준비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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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경험케 하는 배우자



창세기 2장에는 최초의 결혼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십니다(창 2:18). 그리고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그 갈비대로 여자를 만들어 주십니다. 이 장면은 신약에서 신부인 교회를 탄생시키기 위해 그 옆구리가 찢겨져 물과 피를 흘리신 신랑되신 예수님에 대한 모형적인 그림입니다. 부모이신 하나님을 떠나 신부가 되는 아내와 합하여 한 육체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은 인간 결혼의 목적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바울은 남녀의 결혼에 대해 말하면서 결혼 안에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밝힙니다(엡 5:32). 결론적으로 인간의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의 신비를 배우도록 하기 위한 모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우리의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온전한 연합과 사랑을 예수님이 보이신 방법대로 행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방법은 낮아짐과 섬김이었습니다. 흠이 많고 연약한 교회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기꺼이 낮아지셨습니다. 그분과 동일한 거룩하고 완전한 교회와 연합을 이루신 것이 아니라 온통 문제와 죄 투성이인 이 땅의 교회를 그의 신부로 택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의 고난과 죽음으로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을 이렇게 사랑하심으로 그의 신부로 맞아들이셨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불완전하고 죄악으로 가득한 우리들이 온전한 신부로 준비되고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문제가 없고, 완벽한 배우자와 결혼하기를 꿈꿉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자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훌륭한 배우자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결혼이 자아의 확장이기 때문입니다. 좋고 잘난 사람을 만나야 자신이 부끄럽지 않고 배우자를 자기의 긍지와 자랑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결혼한 뒤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배우자와 결혼을 했더라도 문제와 갈등은 항상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혼 자체의 제일 중요한 목적이 복음을 배우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약하고 문제가 많은 배우자와 결혼한 사람은 더 깊이 복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구제 불능인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위해 낮아지고 죽으신 것처럼 배우자를 복음의 방법으로 대할 때 상대방이 변하는 결과 뿐 아니라 자신도 복음에 깊이 잠기게 되어 그리스도의 모습을 더 깊이 내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원리는 어찌 보면 여자에서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두 명령을 살펴보면 이것이 동일한 십자가의 원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남편에게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죽으신 것 같은 사랑이 요구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나타난 방식이며 이것이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또한 아내에게 주어진 복종의 명령 또한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신 낮아짐과 십자가의 원리와 동일한 것입니다. 결국 남편이나 아내나 동일하게 결혼을 통해 교회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있어서 결혼의 중요한 목적이며 유익입니다.

모든 부부의 갈등은 십자가와는 반대되는 세상의 힘과 지배의 원리가 부부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시작됩니다. 높아지려 하고, 지배하려하고, 부끄러워하고, 자기를 위해 배우자를 이용하려는 죄악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고통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혼 안에 숨어 있는 복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약하고, 죄성을 드러내는 배우자를 만나게 된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작은 그리스도로 변해나갈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사랑하신 모습을 매일 일상에서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경험케 하는 배우자는 어느 무엇보다 귀중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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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자매들에게
(뭐 이건 나랑은 상관 없지만.. 혹시나.. 이 글을 보시는 자매분들을 위해서.. )


모든 여자들은 때가 되면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 외로웠던 20대를 화려하게 마칠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자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신앙 있는 자매들의 제일 큰 고민은 교회 안에 '신실한' 형제들이 너무나 드물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결혼 적령기의 형제자매들 비율은 1대 10까지 이릅니다. 더구나 소수의 형제들 가운데서도 자매들이 기다리던 '신실한' 형제들은 더욱 희귀합니다. 하나님이 언젠가 '특별한 만남'을 준비해 주셨을 것이라고 믿는 자매들에게 있어서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은 상당한 스트레스와 고민을 야기합니다. 결혼 때문에 이런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자매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일까요?


첫 번째로 이런 상황을 통해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결혼은 인간의 고안물이 아닌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자매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길 기대하십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바로 남편이나 결혼이 아닌 하나님만이 만족의 근원이 되심을 배우는 것입니다. 인간은 한계와 어려움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기 전까지는 자신이 얼마나 자아 중심적이며 상황 의존적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결혼 때문에 요동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만큼 그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황 의존성이 높은 자매일수록 그런 상황을 단번에 변화시켜줄 단 한 번의 기회를 추구합니다. 바로 그것이 '백마 탄 왕자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야곱의 부인인 레아의 이야기는 바로 이 사실을 보여줍니다. 창 29:31-35까지 나오는 레아가 네 아들을 낳은 이야기는 여자의 깊은 영적 갈망은 결혼이나 남편이 아닌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열등한 외모 때문에 결혼에 대한 모든 소망을 포기했던 레아는 아버지 라반의 '재치'로 야곱과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야곱은 레아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레아는 그 당시 여자가 가장 큰 가치를 두었던 아들을 낳게 되면서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낳는 아들마다 르우벤(보라, 아들이라), 시므온(들음), 레위(연합)라는 남편의 사랑을 갈망하는 의미를 담은 이름을 짓습니다. 그러나 네 째 아들을 낳고는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는 뜻의 유다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생산이 멈춥니다. 네 번째에야 하나님이 가르치시고자 하는 교훈을 그녀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남편이나 아들이 아닌 하나님 한 분만이 그녀를 만족케 하실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자매들의 결혼에 대한 기대는 사실 환상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자기만을 사랑해주는 자상한 남편에 대한 기대, 현재의 가족과 환경을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소망, 예쁘고 말 잘 듣는 아기에 대한 꿈과 같은 환상은 금방 깨어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기대감이 클수록 그 절망도 커지기 마련인 것이 결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전에 하나님만을 의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을 배운 여자만이 남편만을 의존하지 않고 가족을 건강하게 사랑하고 섬길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로 이런 상황을 결혼과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얻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좋은 사람만 만나면 되는 문제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하나님의 약속이 필요한 영역이 바로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개입이 없는 가정은 갈등과 문제의 온상이 되기 쉽습니다. 뼈 속까지 죄악으로 가득한 인생들이 만나 같이 살면서 어떻게 행복과 기쁨과 만족만이 가득하겠습니까? 평생을 다른 환경과 다른 생각으로 살던 사람이 함께 살게 되었는데 어떻게 서로를 향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사람은 많아도 행복한 결혼을 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부부가 어느 정도 노력하면서 대충 맞추어 사는 것으로 행복한 결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그러한 수준으로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통해서 진정한 연합과 회복, 사랑과 희생, 공급과 풍요가 경험되도록 의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이런 수준에 이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결혼을 통해 하나님이 의도하신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약속이 필요합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겸손하게 무릎을 꿇는 자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는 자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시는 분임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런 약속과 그것을 확실하게 믿는 믿음이 있어야 결혼은 채워짐과 은혜가 가득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신실함'에 걸 맞는 '현숙함'으로 준비되는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찬 자매들이 신실한 형제들을 배우자로 원합니다. 그런데 자매들이 신실한 형제들을 원하는 이유는 자신이 부족해도 영적으로 잘 이끌어주며 또한 하나님과 같이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 남편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형제가 이런 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각입니다. 남자들은 결혼을 해서 자아가 깨어지는 과정을 지나가고 또한 아이를 낳아서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느껴본 다음에야 신실한 형제라는 타이틀에 적합한 모습을 갖게 될 것입니다. 결국 자매들은 신실한 형제에게 모든 영적 주도권과 책임을 전가하고자 하는 얄팍한 계산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매가 스스로 현숙하게 준비되어야 합니다.

현숙함의 핵심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가의 유무입니다(잠 31:30). 실제로 결혼을 해서 여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얼마나 화장을 잘 하는가'나 '학교에서 얼마나 좋은 성적을 받았는가'가 아닙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감당해 보지 않았던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 가운데 얼마나 지혜로운 반응을 하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가정에서는 너무나 다양한 우발적인 상황과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세상적인 지혜와 경험이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다양한 환경과 상황 가운데 주시는 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이런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은 인생의 깨어짐과 낮아짐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영혼에 새기는 작업입니다. 결혼 때문에 외로움과 낮아짐의 시기에 처했을 때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우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입니다. 이때 지혜를 체득한 자매는 결혼한 뒤에도 칭찬 듣는 현숙한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자매들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마음만큼 영적 준비에 대한 열망이 강렬했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의 문제는 개개인이 기본적인 부분에서 영적으로 준비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외로움, 주변의 압력, 결혼에 대한 환상, 부모에게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결혼을 도피처로 선택하는 것은 아주 미련한 일입니다. 결혼 때문에 발생하는 많은 스트레스는 자매들의 내면을 더욱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단,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할 때만 말입니다. 어려움을 통해 크리스천 자매들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영혼의 준비를 더욱 잘하게 되길 기대합니다. 영적 준비를 잘한 자매만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행복한 결혼과 가정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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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니 '자매용' 버전도 나에게 필요하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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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k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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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7 22:06

    정환이 너는 위에 조건들 다 만족하는 것 같다. 또 교회 다니는 여자들 중에 네가 신앙 좋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위에 거 다 만족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너는 교회 다니는 여자들 중에 아무나 하고 결혼해도 하나님 뜻에 어긋남이 없겠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기는 한다. 즉, 신앙 좋은 여자와 남자가 결혼한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리실 것 같지는 않네. 이런 생각에 다다르면, 1년 안에 결혼한다. ^^ 내 생각에, 결혼할 여자인지 아닌지는 처음 만났을 때 몇 일 안에 나타나는 수가 있고, 아니면 쭉 오래 알고 지냈는데 갑자기 이 사람이 결혼할 사람이라고 불현듯 느낌이 오면, 결혼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오래 만나나 짧게 만나나 별 상관이 없더라고. 나 우리 집사람 처음 만나고 몇 주안에 결혼하겠다고 마음 먹었잖아. 근데 니가 다니는 교회에 신앙 좋은 여자 중에 니가 마음에 드는 여자 없으면, 친구한테 놀러가서 그 교회 방문해보면 좋다. 우리집에도 온나. 우리 교회 데리고 가 줄게. 시집 보내야 하는 부모님들 꽤 있다. 아 그리고 그래도 안되면, 안 믿는 여자 만나서 전도하면 된다. 이건 좀 리스키한데, 나는 되더라. 우리 집사람 요새 내보다 신앙이 갑절은 좋은 것 같다. 아 봄방학 대 보스턴 갈려다가 말았는데 갔으면 연락할려고 그랬거든. 그래서 들렀는데, 이상한 글이 있어서 답글 달고 간다. 잘 지내고.

    • 2010/03/18 02:45

      보스턴 오지 그랬어..
      요즘 보스턴 날씨 너무 좋아서 보스턴 아닌거 같은데 말이지..
      남녀가 만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 모두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시는 자연스러움이 있는 것 같다..
      결혼할 사람일지 아닐지는 얼마나 자연스러운가에 달려 있을 듯..^^ ㅎㅎ Thanks for your advice..

  2. 2010/03/24 19:45

    목군 ㅎ 오랫만이지? 어여 좋은자매 만나서 알콩달콩 둘이 사는 모습 보여주시게나 기대하고 있을께~! ^^

    • 2010/03/25 02:00

      ㅎㅎ 누나 오랜만.. ㅎㅎ 누나 아직 LA에 있나?
      한국에 갔다는 얘기도 들었었는데..
      얼굴 본지도 진짜 오래된듯 싶네.. 쩝..
      한국이든 LA든 보스턴이든.. 함 봅시다..~~
      누나의 기대에 곧 부응할 터이니.. ㅋㅋㅋ

  3. 2010/04/23 19:53

    오...... 이 글 지금 쭉 훑어봤는데, 나중에 더 자세히 읽어바야겠어요. ㅎㅎㅎㅎㅎ

  4. 2010/04/25 08:34

    비밀댓글 입니다

    • 2010/04/25 12:02

      ㅎㅎ 오랜만.. 어찌 지내나? ㅎㅎ
      정독 잘 하고.. ㅋㅋ
      글을 읽는다고 찾게 되는건 아니더라.. ㅋㅋㅋㅋ
      이번에 한국은 못갈듯.. ㅠ.ㅠ 으흑으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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