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서북부 교외에 있는 큰 공원으로 청대에는 여름의 별궁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총 면적 267 ha 로 이중, 昆明湖라는 인공못이 3/4를 차지한다. 북부의 인공산은 萬壽山이라고 한다. 주변은 모두 벽으로 쌓여 있다. 이화원은 金朝 1153년에 황제가 궁전을 조성한 것을 시초로 명나라때에 몇 채의 건물을 세워 好子園으로 개칭하였다. 청의 건륭제는 1750년 昆明湖를 확대하고 만수산에 각 건물을 세웠다. 그런데, 1860년 제 2차 아편전쟁으로 영,불 연합군이 북경을 공격하면서 이 곳과 원명원을 점령, 형편없이 파괴했다. 그 후 서태후는 해군의 군함 건조비를 유용해서 이 별궁을 재건했다.(1888년)
북경의 서북쪽 교외에 위치한 이화원은 하나의 수려한 황가원림이다. 원래는 12세기 금나라 제왕의 행궁이었으나, 청대 건륭황제 때 이르러 원림으로 증축하고 청의원이라 개칭하였다. 1860년에 청의원은 영,프 연합군에 의해 불타 버렸으며, 1888년에 자희 태후(慈禧太后)는 해군 군비를 유용하여 그것을 다시 건축하고 이화원이라 개명하였다.
이화원은 첫째, 전체 면적 290ha로 규모가 방대하며 현존하는
중국고대 최대의 황가원림이다. 둘째 , 산, 호수, 섬, 회랑, 전(殿), 당(堂), 루(樓), 각(閣)의 설계가 독특하고 배치가 잘 어울리며 풍경이 아름다워
중국 원림의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청나라 황제의 가든 겸 행궁이다. 1750년에 건조된 이화원은 원명이청의원, 건릉황제가 모친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 후 아편전쟁때 이화원은 영국, 프랑스 군에 한번 약탈당하고 훼손된것을 서태후가 북해함대의 해군경비를 남용하여 수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290 평방km의 면적을 가진 이화원은 북경최대의 공원이며 원내에 인공호수, 산, 누각, 전당, 다리, 긴 낭하들이 조화를 이룬 정원문화의 극치이다.
북경 시의 서북부 교외에 있는 큰 공원으로 청대에는 여름의 별궁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중국 최대의 황실 정원으로 한 바퀴 돌려면 거의 한나절 걸린다. 면적이 자금성의 4배, 천안문 광장의 6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원이다.
공명호라는 인공못은 이곳의 4분의 3을 차지한다. 이 정원은 1860년 애로호 사건으로 파괴된 후 1888년 서태후는 국정 대신에게
중국 해군을 훈련할 인공 호수를 만들자고 제안함으로써 만들어졌다고 한다. 결국
중국 해군의 예산으로 호수를 환성하자 훈련장 대신 개인의 유락지로 변했다. 이화원 안의 인수전에서 서태후는 정사를 보았는데 이쪽저쪽에 목숨 壽가 많이 새겨져 있는 것은 서태후가 장수하기를 매우 간절히 원했던 흔적이라고 한다.
중국의 고전 속에 나오는 옛 이야기와
중국의 유명한 그림을 복도에 그린 長廊과, 서태후가 비오는 날 호숫가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감상하기 위해 나와 앉았다는 石船도 볼 만하다. 불향각을 주체로 지형과 수명을 충분히 이용하여 가산의 조성으로부터 길의 주향, 전당, 누각의 배치로부터 다리의 조형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전통적 원림 조성 기예를 충분히 계승, 발양함으로써 상부상조의 전체적인 원림적 예술 효과를 잘 나타내었다.
전형적인
중국풍 정원인 이화원. 곤명호와 만수산 언덕의 비경을 보듬어 안고 있는 청대의 별궁으로, 연꽃이 유난히 아름다워 서태후는 이 연못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서태후는 이 곳 여름 별궁에 기거하면서 군함의 건조비를 유용하여 움직이지 않는 돌배를 만들었다. 청나라 말기 잇따른 외우내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궁전 양식의 대리석 석방에서 파티와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이화원은 북경시 서북 교외에 위치, 도심에서 약 19킬로미터 거리로 청나라 때의 황실 원림과 행궁이었다. 이화원의 원명은 청의원이며 1764년에 건조되었다. 부지 290헥타르, 그 중 수면이 220헥타르이다. 원내는 궁정구, 전산 전호구, 후산 후호구 3개 경치구로 나뉜다. 전당, 누각, 정자가 도합 3,000여칸으로 황제와 황후가 정치 활동을 하며 휴식, 유람하던 곳이다.
1860년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타버리고 1888년에 자희태후가 해군 경비 500만냥 군비를 유용하여 재건, 10년만에 완공, 이름을 "이화원"으로 고쳤다. 이화원은 북쪽의 만수산을 등지고 남쪽은 곤명호를 안고 있다. 불향각을 주체로 지형과 수면을 충분히 이용하여 가산의 조성으로부터 길의 주향, 전당. 누각의 배치로부터 다리의 조형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전통적 원림 조성 기예를 충분히 계승, 발양함으로써 상부 상조의 전체적인 원림 예술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화원은 본래 북경 서북쪽에 위치하여 있는 자연 호수이며, 그 옆에는 옹산(甕山)이라는 산하나가 있어서 옹중박(甕中泊-옹산의 호수)라고 불리웠다. 그 근처는 모두 전답이었다고 한다. 청나라 건륭황제때 서쪽부분의 수로를 수리하기로 결정하고, 자연의 호수를 개발하여 저수량을 높였다. 옹산박이라는 명칭은 개발후에는 곤명호(昆明湖)로 개칭되었다. 그 이유는 한나라 무제(武帝)가 옛날에 곤명지방(
중국서부)을 평정한 후, 수도인 장안(지금의 서안)에다가 곤명호라는 호수를 파고 수군을 조련하였던 의미를 청나라 건륭황제가 재현코자 함이었다.
옹산에는 대극은수사(大極恩壽寺)라는 절을 대규모로 세워 건륭황제 생모의 60세 생신을 경축하였고, 이 산의 이름을 만수산(萬壽山)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산꼭대기에는 벽돌로 쌓아 그 불당을 지혜해(智慧海)라고 불렀다. 만수산의 앞쪽 산자락에는 정자와 누각을 건설하였고 그 뒷산에는 탑을 배치하여 놓았다.
산아래 뒤의 호숫가에는 강남지방 특색을 갖춘 거리를 설치하여 놓고 소주가(蘇州街)라고 하였다. 이런 증/개축과정을 거쳐서 만수산과 곤명호가 하나의 독특한 산수풍경을 갖춘 정원을 이루었다. 당시에는 이 정원을 "청의원"이라고 불렀다.
청의원은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圓明園)을 불사를 때 심각한 훼손을 당하였다. 만수산의 절과 소주가는 모두 불에 타버리고 지혜해에 있던 4만여건의 진귀한 진열품들은 대부분이 망가졌다. 광서 14년(1888년)에 서태후는 해군 군비로 청의원을 복원하고 10년간의 공사를 비밀리에 진행하였다. 청의원 재건후 이를 이화원으로 개칭하고 서태후의 휴식장소로 되었다. 1900년도에 이화원은 8개 연합군의 습격을 받아 정원내의 건물들이 다시 불타버리고 진귀한 문물들을 빼앗겼다. 서태후는 연합군의 습격때 피해 있다가 북경으로 돌아온 후 거금을 들여 또다시 이화원을 수복하였다.
이화원은 호수와 산의 풍경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정원의 경치도 좋다. 정원안에는 서로 다른 양식의 건축들이 독립되면서도 연관성 있게 서산(西山)과 옥천산(玉泉山)을 배경으로 하여 세워져 있어서, 인공물과 자연풍경이 조화된
중국 예술의 범례가 되었다. 정원은 각 궁전, 절과 사당, 정원 고유의 건물을 합쳐서 3천여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치활동구, 거주구와 유람구의 3개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정치활동구는 동궁문(東宮門)안에 있는데 인수전(仁壽殿)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서연간에 서태후와 광서제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화원에서 보내었다. 여기서 대신과 외국사절을 접견하고 광서제가 신변법(新變法)을 고쳐 실행할 때, 일찍이 여기에서 캉유웨이(康有爲)를 친견하고 상의를 했다고 한다.
거주지역은 옥란당(玉瀾堂)과 의운관(宜芸館), 낙수당(樂壽堂)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채의 대형 사합원(四合院-북방의 전통 건축양식)이라고 보면 된다. 이곳에는 50-60칸의 복도가 건축물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고 있다. 낙수당은 서태후의 숙소였으며 거주지구의 주요한 건축이었다. 정문 양측의 백색담장에는 유리로 만든 창(燈窓)이 있다. 창의 모양이 각양 각색으로 되어 있으며, 이 창문들을 통하여 호수를 볼 수가 있다. 정문을 들어가면 커다란 돌이 하나 있는데 그 크기가 병풍만 하며 높이가 4m, 길이가8m이다.
돌 하나 하나가 정밀하게 조각된 파도모양의 파란돌이 가로로 놓여 있다. 역사에 의하면 이 돌은 방산(房山)에서 나왔는데, 운반할 때 백여명의 인부가 마차 열대를 이용하여 산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옥랑당은 광서제의 거주처였다. 무술정변의 실패후 광서제가 중남해에 있을 때 붙잡혀서 옥랑당에 갇혔다고 한다. 의운관은 옥랑당 뒤에 있으며 옥랑당 본채의 후문에 있는 문과 서로 통한다. 이곳은 광서제의 황후가 거처하던 곳이었다. 주거지구인 덕화원(德和園)과정원에는 희극(戱劇)을 공연하는 누각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서태후가 희극을 관람 하였다고 한다.
이화원의 풍경 유람지역은 주로 만수산과 호수로 구성되어 있다. 만수산은 산세를 따라서 층층으로 건축되어 있는 인공산으로 기세가 웅장하고 휘황찬란한 궁전누각이 지어져 있다. 불향각(佛香閣)은 높이 21미터의 석조기초위에 41미터 높이의 누각을 지은 것으로 그 높이가 만수산 정상보다 높으며, 전체 정원의 중심점이 되고 있다. 만수산의 주요 건축물은 산의 앞면에 있다. 이곳에서 곤명호의 전경을 모두 볼 수 있다.
곤명호는 제방에 의해 3부분으로 나누어 진다. 각 부분의 중간에는 섬이 있고 전설에 나오는 신선이 사는 세가지 선경을 나타내고 있다. 곤명호의 북쪽을 따라서 건설된 긴 복도는 길이가 728미터로서
중국의 정원 건축에서 가장 길다. 이 복도에는 4개의 8각정이 있고, 복도의 천장에는 역사적인 인물, 산수화등 1만 4천여 폭의 그림이 있다. 그래서 이 복도의 별칭을 "화랑(花廊)"이라고도 한다. 곤명호의 동쪽에는 제방이 있는데 제방에는 지춘정(知春亭), 곽여정(廓如亭), 동우(銅牛)등이 있다.
이곳에는 17개의 교각을 가진 다리가 곽여정과 남호도(南湖島)를 연결지으며, 이 다리의 총 길이는 150미터 이다. 다리의 돌난간 위에는 544마리의 돌사자가 각기 다른 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이화원의 환경은 아름답고 정적이 흐르며 건축이 정교하여
중국국민의 지혜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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