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회를 정하기 위해 이 교회 저 교회를 돌아다니고 있다. 이 곳 사람들 표현으로 'shopping'을 한다고 하는데, 단어가 참 마음에 안들지만 뭐 딱히 틀린 표현은 아닌거 같기는 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다.
지금까지 나는 7개의 교회를 섬겼었고, 이번에 8번째 교회를 찾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께서 좋은 공동체를 예비하고 계시는 것에는 한치의 의심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나, 정작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서는 고민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전의 6번의 교회 중에서 3번은 부모님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정해져 다녔던 교회였고(초대교회,
중국천진한인교회, 대전새로남교회), 2번은 내가 선택을 하기는 했지만 거의 추천에 의해서 이미 마음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다녔던 교회였고(사랑의교회, 북경21세기한인교회), 2번은 내 의지라기 보다는 상황에 맞춰서 갔어야 했던 교회(차 없으면 교회를 갈 수 없는 상황에서 ride가 가능한 곳이었던 와싱턴한인교회, 군대에서 갔던 국군중앙교회)였다.
막상 보스턴에 오고나니, 솔직히 교회가 여러군데 있는 것이 더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냥 한군데만 있으면 '어쩔 수 없이'라도 다니면서 그 곳에 만족하고 다닐텐데, 교회가 여러 군데가 있고 어느 곳 하나 확실하게 추천받은 곳이 없는지라 결국 돌아다녀보며 정말 말 그대로 'shopping'을 하고 있다.
좋은 교회를 정하는 기준은 뭘까? 오늘 교회를 갔다 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먼저 가장 기본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설교 말씀'일 것이다. 나 또한 흔히 말하는 '눈 높아진 신자' 축에 속하게 된지라,
한국에서 내노라 하는 명설교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다가 교회를 찾자니 마음 속 한켠에 말씀을 '평가'하는 교만한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 스타일의 설교만을 고집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지만, 또 그렇다고 나와 너무 다른 설교 스타일에 무작정 덤벼드는(?) 것은 또 위험성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아멘할 수 있는 설교여야 할텐데 말이다.
내 스타일의 설교는 또 무엇일까? 일단
말씀에 바탕을 둔 설교여야 한다. 말씀은 읽어놓고 예화나 교훈만을 늘어놓는 교양강좌가 아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삶에 도전을 주고, 히브리서 말씀대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히 4:12) 설교여야 한다. 그리고,
사랑이 있는 설교여야 한다. 이것은 참 정의내리기 힘든 것 같다. 마구 꾸짖기만 하거나 뭔가 하고 싶은 얘기만 쏟아내는 설교가 아니라, 영혼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또는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려는 목자의 마음이 담긴 설교를 말한다. 예수님의 설교가 바로 그런 설교가 아니었을까 싶다.
교회를 정하는 또 다른 기준은
"공동체"이다. 어찌보면 유학 생활 중에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주일 예배만 딱 드리고 집에 가려하는 유혹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대학부 8년 동안의 공동체 생활을 통해 배운 것은 '신앙'은 결코 혼자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원기 목사님 말씀처럼 Christianity is a personal relationship, but NOT private. 얼마나 좋은 공동체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떠한 교제를 맺으며 그리스도의 머리되신 교회를 만들어 가느냐가 신앙의 핵심 요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목사님의 설교만을 가지고 교회를 정할 수 없는 것이다.
공동체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일단
말씀의 사모함이 있는 공동체인가가 중요하다.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모였으나 단순한 친목 도모의 장으로 사용하는 곳이 너무나도 많다. 성경공부나 기도회가 친목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로만 사용되고 성령 안에서 하나됨이 없는 공동체는 아무리 그 공동체가 하나라 할지라도 세상의 모임과 차별됨이 없다. 골로새서 3:16에서 말씀하듯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이 있는 공동체인지가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공동체 내부의 사람들 사이의 친밀함이 아닌 처음 온 사람들이나 아니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이다. 처음 온 사람이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주는 노력은 정말 쉽지 않은 노력이다. 모두가 다 교회에 처음 왔던 경험은 있겠지만 그때의 어색함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찌보면 새신자를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공동체만큼 영혼의 소중함을 아는 공동체는 없을 것이다. 또한 얼마나 많은 구제와 선교, 전도를 하는지는 그 공동체의 건강함의 지표가 된다고 생각한다. 안으로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 말씀이 넘친다 할지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사랑의 실천이 없다면 손과 발이 없는 비정상적 몸인 것이다. 추가로
훈련하는 공동체인지도 중요하다. 꼭 사랑의교회 식의 제자훈련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씀, 기도, 전도 등에 대한 훈련을 제공하는 공동체야말로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서 민감한 예배자로 세워놓는 지지대가 되어주는 공동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기준은
'예배'라 생각한다. 말씀과 예배는 같은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씀은 하나님의 선포하시는 음성을 듣는 자리라면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내가 들어가는 자리라 생각한다. 화려한 찬양팀이나 현란한 기도, 짜여진 콘티에 의한 완벽한 예배 진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허술하고 실수가 있는, 많은 끊김이 있다 할지라도 공동체가 함께 즐거워 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예배인지가 중요하다 생각된다. 이것이야 말로 정의할 수 없고 내 스스로가 예배를 드리며 느낄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나에게는 그다지 전통적인 예배냐 현대적인 예배냐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더 웃긴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의교회 대예배가 그 균형을 가장 잘 맞추고 있는 예배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 외에도 교회까지의 거리, 시간적인 요소, 환경 등등 고민할 거리는 많이 있다. 하지만, 위의 세개가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보스턴에 와서 '보스턴 온누리 교회'와 '캠브리지 연합 장로교회' 두 곳을 다녀왔다. 아직까지는 솔직히 딱 이 교회다 싶은 곳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뭐 지금까지 다녔던 모든 교회도 위 조건에 대입하면 100점 만점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어디 있겠는가.. 단지 선택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나름 기준을 세워보려고 하는 것이지만, 아직 결정내리기는 힘든 것 같다. 한군데 교회를 더 가보던지 아니면 이번 주중으로 정해야 할 것 같다. 공동체 없는 삶은 너무 불안정 한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공동체를 찾아서 그 공동체의 지체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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