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9/09/12 하나님 나라.. 다시 보길 원하며.. (1)
  2. 2009/08/16 내 공동체..
  3. 2008/08/31 나그네를 대접하라.. (2)
  4. 2008/08/24 좋은 교회를 정하는 기준.. (9)
  5. 2000/10/31 말씀 앞으로..
  6. 2000/05/15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 교제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리더의 자리에 서게 된다.
아니, 한번 리더는 평생 리더이기에 원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순장으로 처음 간 순장모임..
이번 학기 주제는 "Kingdom of God"이다.. 하나님 나라..

미국으로 바로 오기 전에 내 가슴을 뛰게 했던 단어.. 하나님 나라..
내 사명선언서에서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단어.. 하나님 나라..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기 보다는, 함께 꿈 꾸는 모임이었으면 좋겠다.
작은 소그룹이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경험하고, 그 나라를 확장하는..

언제나 소그룹 시작 전에 사람들의 이름을 받았을 때..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한 이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많은 기대감과 두려움이 교차한다고 할까나?

우리 순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기대한다..
또한 성령 하나님과 함께 만들어 가는 하나님 나라가 기대된다.

이 첫 마음 그대로 학기 끝날때 까지 계속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Posted by Mok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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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8 04:53

    비밀댓글입니다

요즘 예배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한다.
예배가 살지 않기에 삶도 뭔가 제대로 돌지 않고 있다.
좀 갑갑하다..
아직도 교회가 내 공동체라는 생각이 안든다.. 그래서 붕 뜨는거 같기도 하다..

'내 공동체'라는 생각은 언제쯤부터 드는 것일까?
막상 생각해보려니 잘 기억이 안난다.. @.@

새로남교회를 다닐때는 처음에 알게되었던 병우와 친해지고 난 뒤 언젠가 부터였던 것 같다..
임원도 아니었는데 임원들과 친해져서 교회 행사 준비를 하면서 공동체라는 것을 생각해 봤던 것 같다.
물론 고등부에 가서는 찬양팀 예나리를 하면서 내 공동체라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됐고..

사랑의교회에서는 세가지 방향(?)을 통해서였다.
GBS를 통해서 아름누나의 케어가 매우 고마웠고, 80또래 형들을 알면서 행정팀을 하게 된 것, 그리고 또래 모임..
이러면서 내 공동체라고 생각하게 된 듯 싶다.

북경 21세기 교회에서는 교회 자체가 내 공동체라는 생각 보다는 SR 사역팀이 내 공동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만큼 시간도 짧았었고..

메릴랜드에서는 다니엘속 소그룹 통해서 내 공동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근데, 소그룹이 KBS 학교 성경공부모임과 겹쳐있었기 때문에 조금 애매했다..


결국 친한 사람을 만나고, 사역을 하면서 내 공동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나보다..
그런데 이런게 옳은 것일까? 물론 옳다 그르다를 꼭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왠지 내가 무언가를 해서 사람들에게 내가 드러나야(?) 그 공동체 안에서 내 필요성을 느끼고 그때 내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기분이 든다.
즉, '내 공동체' = '내가 소유한' or '내가 control(?)할 수 있는' 공동체 이렇게 되는 것이다..
(너무 나쁘게 해석하나?)


보스턴에 와서 바쁘다는 핑계이기도 했지만, 내 스스로를 시험(?)해보고자 일부러 지난 1년동안 아무 섬김의 자리에 있지 않았었다. 그냥 평범한 조원으로 공동체에 있으면서도 내 공동체라고 느끼며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꽝이다. 내 공동체라고 느끼기는 커녕, 예배 시간에 깊은 자리로 나아가기도 힘들었다. 오히려 1년만에 갔던 대학1부 예배시간이 훨씬 더 좋고 감사했었다.


간사 시절에 항상 고민했던 것.. 처음 온 사람을 어떻게 적응시켜야 하는가..
어찌보면 지난 1년간 스스로에게 적용하며 실험해봤던 건데..
흠.. 일반화 시킬수는 없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뭔가 사역을 해야 내 공동체라고 느끼나보다.

그냥 소그룹 모임에서 조용히 있으면서도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하는 뭔가 이상적인(?) 그런 사람은 될 수 없을라나.. 섬김의 자리에서 사역을 하는 내 마음에는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지 않고 싶지만 그런게 사실인지라.. ㅠ.ㅠ


내 공동체라는 생각이 안 들어서일까..
나랑 워낙에 맞지 않는 공동체일까..
내가 사랑의교회 대학부 스타일에 너무 젖어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1년 내내 했다. 뭔가 갑갑한.. 아쉬운..

몇주뒤면 이제 첫 섬김의 자리에 서게 된다. 오랜만에 하는 리더의 자리..
이런 가운데 과연 리더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대학부와는 너무 다른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기대하는 것도 달라져야 하고 요구하는 것도 달라야 하고,
함께 해야 하는 것도 달라야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

그래서 기도를 해야하는데 문제가.. 예배가 회복되지 않아서 기도도 잘 안된다.. 휴..


공동체.. 공동체.. 공동체..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항상 고민이다..

아.. 나의 사랑 나의 고민.. 나의 교회..
Posted by Mok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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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를 고르는 과정 중에 다른 것 보다 나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지난 8년간의 사랑의교회 대학부 생활에 대한 반성이었다. 바로 새로 교회를 찾아 온 사람들에게 대한 사랑과 관심을 쏟지 못했다는 것이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라는 속담 만큼이나 내 지난 모습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은 없을 것 같다. 개구리로 너무 오래 지내다보니 올챙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오는지 기억도 안났다. 이제서야 오랜만에 다시 올챙이로 돌아가고 나니 개구리 때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게 된다.

  교회에 처음 온다는 것.. 기존에 믿던 사람이던지, 새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던지 상관없이 모두에게 굉장한 어색함과 생소함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도 새가족 모임만 가면 왠지 모르게 예배 순서와 모든 과정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 사람이 아직 '공동체의 지체'가 되지 못한 채 공동체 모임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거리감을 최소화 시키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하는 사람들은 바로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들을 잘 대해줘야 하는가? 이들이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속해 있지 못하고 아직 지체의 일부가 되지 못한채 몸과 영혼이 쉴 곳을 아직 찾지 못한 나그네인 것이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출 23: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신 10:19)

  보통 우리는 예전에 공동체를 찾아 돌아다니던 예전 기억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당시 온갖 어색함과 여러 교회 결정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이곳 저곳을 다니던 경험은 모두에게 있다. 설령 친한 친구의 손에 이끌려 왔다고 해도 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 사람에게서 거리감을 느끼는 묘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랬던 우리의 경험이 나그네를 잘 대해줘야 하는 이유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 3:2)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딛 1:8)


  또한, 공동체 리더십에 대해서는 그 조건에 나그네를 대접해야 함이 명시되어 있다. 흔히들 생각하는 리더십의 조건에 해당하는 거룩, 절제 등과 같이 포함되는 것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일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조건이다. 흔히 공동체에서는 새로온 사람들을 담당하는 부서나 사람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인지 새로온 사람들에게 안내하고 인사하는 것이 맡은 자들의 일인 것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공동체의 리더십이라면 모두에게 나그네를 대접해야 하는 역할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나그네를 대접할때는 나그네의 사정을 생각하며 사랑을 담아 대접을 해야한다. 최근 3개의 교회를 다녀보며 느낀 것은 나그네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 가가 사람마다 확연히 달랐다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짜여진 프로그램이나 좋은 사람들이 아닌, '한 영혼을 아끼는 사랑의 마음'이다. 흔히들 공동체 크기가 작으면 한 영혼에 대한 마음이 커서 새로온 사람들을 잘 반겨주고, 크기가 크면 잘 반겨주기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맡은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전 4:2)고 하신 것처럼. 크기와 상관 없이 '내' 태도가 어떻느냐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이다.

  두가지 매우 다른 경험을 했다. 교회가 모두 조금 멀리있기 때문에 교회를 가려면 ride가 필요하다. A교회를 가는데 ride 부탁을 조금 늦게 새가족 담당 리더에게 했다. 그 리더가 ride 담당자를 알아보니 오늘 사정이 있어서 교회를 못오게 됐다고 한다. 결국 그 리더는 한참을 돌아서 우리를 pick-up하러 와주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우리 때문에 예배에 그 리더도 한참 늦게 되었지만, 매우 기쁘게 섬겨주는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반대로 B교회를 갈 때의 일이었다. ride 약속을 잡고 기다리는데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연락을 했더니, 우리를 못보고 지나쳤다고 한다. 고맙게도 돌아서 다시 우리에게로 와 줬는데, van에 타려고 하는데 숨이 멎는 줄 알았다. van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싸~한 분위기와, 우리가 처음 온 사람인 줄 분명히 아는 driver도 우리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어서 오세요'라는 말도 없이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ㅡ.ㅡ;

  이것이 단순히 교회 크기의 문제일까? 이 두 교회는 잘 알려진 큰 교회이다. 공동체의 크기의 문제가 아닌 영혼에 대한 사랑의 문제이다.



  새로 온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실 입구를 들어가는 길목에서의 반가운 인사와 안내가 너무나도 이들에게는 고마운 행동이 된다. 예배실을 이동해야 하는 것도 공동체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일 수 있지만, 처음 온 사람들에게는 큰 일이고, 예배 끝나자마자 눈치 채고 안내해주는 사람이 가장 고마운 사람이 된다. 옆에서 멍하니 서있지 않도록 이야기를 붙여주고, 인사를 나눠주는 사람들이야 말로 그 공동체에 대한 첫인상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인 것이다.

  많은 반성을 했다. 리더십으로 섬겼던 지난 시간들 가운데 나는 과연 얼마나 새신자들에게 웃음으로 인사를 했으며,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섬겼는지 돌이켜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내가 맡은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가족을 담당한 사람들을 먼저 찾기에 바빴던 것이 사실이다.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원한다. 21세기의 나그네는 공동체를 찾아 헤메는 이들이 아닐까 싶다..




Posted by Mok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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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31 21:22

    이거 퍼가요 오빠...^^ 으흐-나도 올챙이 되는 건 두렵다요.ㅠㅠ흐엉.

    • 2008/08/31 23:26

      윤일아..^^ 두번 세번 느낀거지만..
      네가 맡은 사역.. 너무너무나 중요한거다..^^

      예수님이 잠깐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치유의 권능을 베푸신 것처럼.. 설령 대학부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사랑을 쏟아 부어줘야 하는거 같아..

      많은 은사와 재능 가진 윤희이기 때문에 잘 할꺼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윤희 혼자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 윤희가 간사로서 다른 간사들, 엘더들, 리더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깨우치는 더 중요한 역할도 있는거 같네..

      새가족으로 새 교회를 가서 인사할 때마다 윤희 생각 많이 났어..^^ 지혜와 온유함이 넘치는 새가족 간사 되길 진심으로 기도하마..

  요즘 교회를 정하기 위해 이 교회 저 교회를 돌아다니고 있다. 이 곳 사람들 표현으로 'shopping'을 한다고 하는데, 단어가 참 마음에 안들지만 뭐 딱히 틀린 표현은 아닌거 같기는 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다.

  지금까지 나는 7개의 교회를 섬겼었고, 이번에 8번째 교회를 찾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께서 좋은 공동체를 예비하고 계시는 것에는 한치의 의심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나, 정작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서는 고민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전의 6번의 교회 중에서 3번은 부모님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정해져 다녔던 교회였고(초대교회, 중국천진한인교회, 대전새로남교회), 2번은 내가 선택을 하기는 했지만 거의 추천에 의해서 이미 마음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다녔던 교회였고(사랑의교회, 북경21세기한인교회), 2번은 내 의지라기 보다는 상황에 맞춰서 갔어야 했던 교회(차 없으면 교회를 갈 수 없는 상황에서 ride가 가능한 곳이었던 와싱턴한인교회, 군대에서 갔던 국군중앙교회)였다.

  막상 보스턴에 오고나니, 솔직히 교회가 여러군데 있는 것이 더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냥 한군데만 있으면 '어쩔 수 없이'라도 다니면서 그 곳에 만족하고 다닐텐데, 교회가 여러 군데가 있고 어느 곳 하나 확실하게 추천받은 곳이 없는지라 결국 돌아다녀보며 정말 말 그대로 'shopping'을 하고 있다.


  좋은 교회를 정하는 기준은 뭘까? 오늘 교회를 갔다 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먼저 가장 기본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설교 말씀'일 것이다. 나 또한 흔히 말하는 '눈 높아진 신자' 축에 속하게 된지라, 한국에서 내노라 하는 명설교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다가 교회를 찾자니 마음 속 한켠에 말씀을 '평가'하는 교만한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 스타일의 설교만을 고집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지만, 또 그렇다고 나와 너무 다른 설교 스타일에 무작정 덤벼드는(?) 것은 또 위험성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아멘할 수 있는 설교여야 할텐데 말이다.

  내 스타일의 설교는 또 무엇일까? 일단 말씀에 바탕을 둔 설교여야 한다. 말씀은 읽어놓고 예화나 교훈만을 늘어놓는 교양강좌가 아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삶에 도전을 주고, 히브리서 말씀대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히 4:12) 설교여야 한다. 그리고, 사랑이 있는 설교여야 한다. 이것은 참 정의내리기 힘든 것 같다. 마구 꾸짖기만 하거나 뭔가 하고 싶은 얘기만 쏟아내는 설교가 아니라, 영혼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또는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려는 목자의 마음이 담긴 설교를 말한다. 예수님의 설교가 바로 그런 설교가 아니었을까 싶다.

  교회를 정하는 또 다른 기준은 "공동체"이다. 어찌보면 유학 생활 중에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주일 예배만 딱 드리고 집에 가려하는 유혹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대학부 8년 동안의 공동체 생활을 통해 배운 것은 '신앙'은 결코 혼자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원기 목사님 말씀처럼 Christianity is a personal relationship, but NOT private. 얼마나 좋은 공동체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떠한 교제를 맺으며 그리스도의 머리되신 교회를 만들어 가느냐가 신앙의 핵심 요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목사님의 설교만을 가지고 교회를 정할 수 없는 것이다.

  공동체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일단 말씀의 사모함이 있는 공동체인가가 중요하다.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모였으나 단순한 친목 도모의 장으로 사용하는 곳이 너무나도 많다. 성경공부나 기도회가 친목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로만 사용되고 성령 안에서 하나됨이 없는 공동체는 아무리 그 공동체가 하나라 할지라도 세상의 모임과 차별됨이 없다. 골로새서 3:16에서 말씀하듯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이 있는 공동체인지가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공동체 내부의 사람들 사이의 친밀함이 아닌 처음 온 사람들이나 아니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이다. 처음 온 사람이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주는 노력은 정말 쉽지 않은 노력이다. 모두가 다 교회에 처음 왔던 경험은 있겠지만 그때의 어색함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찌보면 새신자를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공동체만큼 영혼의 소중함을 아는 공동체는 없을 것이다. 또한 얼마나 많은 구제와 선교, 전도를 하는지는 그 공동체의 건강함의 지표가 된다고 생각한다. 안으로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 말씀이 넘친다 할지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사랑의 실천이 없다면 손과 발이 없는 비정상적 몸인 것이다. 추가로 훈련하는 공동체인지도 중요하다. 꼭 사랑의교회 식의 제자훈련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씀, 기도, 전도 등에 대한 훈련을 제공하는 공동체야말로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서 민감한 예배자로 세워놓는 지지대가 되어주는 공동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기준은 '예배'라 생각한다. 말씀과 예배는 같은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씀은 하나님의 선포하시는 음성을 듣는 자리라면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내가 들어가는 자리라 생각한다. 화려한 찬양팀이나 현란한 기도, 짜여진 콘티에 의한 완벽한 예배 진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허술하고 실수가 있는, 많은 끊김이 있다 할지라도 공동체가 함께 즐거워 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예배인지가 중요하다 생각된다. 이것이야 말로 정의할 수 없고 내 스스로가 예배를 드리며 느낄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나에게는 그다지 전통적인 예배냐 현대적인 예배냐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더 웃긴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의교회 대예배가 그 균형을 가장 잘 맞추고 있는 예배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 외에도 교회까지의 거리, 시간적인 요소, 환경 등등 고민할 거리는 많이 있다. 하지만, 위의 세개가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보스턴에 와서 '보스턴 온누리 교회'와 '캠브리지 연합 장로교회' 두 곳을 다녀왔다. 아직까지는 솔직히 딱 이 교회다 싶은 곳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뭐 지금까지 다녔던 모든 교회도 위 조건에 대입하면 100점 만점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어디 있겠는가.. 단지 선택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나름 기준을 세워보려고 하는 것이지만, 아직 결정내리기는 힘든 것 같다. 한군데 교회를 더 가보던지 아니면 이번 주중으로 정해야 할 것 같다. 공동체 없는 삶은 너무 불안정 한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공동체를 찾아서 그 공동체의 지체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소망한다.
Posted by Mok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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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맞는말씀이시네요ㅎ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08/08/25 11:04

  2. 2008/08/26 02:50

    100% 동의! 대전 내려와서 내가 겪었던 고민들을 그곳에서 네가 하고 있구나..ㅎㅎ
    정말 100% 만족할 수 있는 공동체를 찾기란 정말 힘든 것 같애.
    그치만 기도중에 확신을 주신다면, 그 가운데 믿고 나아가는 수밖에..ㅋ
    암튼~ 좋은 공동체 찾기를 기도하마.. ^^*

  3. 2008/08/31 10:59

    쩝. 저도 이제 슬슬 종교외출을 다녀야 할텐데 대략 걱정이라는...걍 눈딱감고 3시간 왕복하는 원래 다니던 집근처 교회로 갈까 고민중 -_-;;

    • 2008/08/31 17:08

      이게 누구야.. 오랜만이다.. ㅎㅎ
      이제 얼마나 남았나?? 궁금하네..
      마지막에 인사도 못하고 왔다.. 아쉬워라..
      넌 어여 준비해서..
      여기 H School이나 M School 와라. ㅎㅎ
      NY에 이어 Boston에도 JSC 지부 하나 만들어 보자..^^

      그리고.. 교회는.. '좋은'교회를 가길 바란다..
      집근처 교회가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위에 적은.. 그런 교회 갔음 하네..
      원하면 추천해줄께..^^
      Feel free to ask me..~~

  4. 2008/09/01 21:39

    나도 교회 하나 추천해줘요...ㅋㅋ
    교회 찾는 중인데...
    그냥 집 근처 미주한인 성결교회 갈까 생각중...
    청년부가..10명 내외라는...ㅋㅋ
    아 고민되네...--;;

    p.s 영어 이름...ㅋㅋJoshua...만들었다는...^ㅠ^

    • 2008/09/03 01:02

      청년부가 10명 내외인거야 뭐.. 좋은거네.. ㅎㅎ
      Joshua Oh... ㅋㅋ
      Joshua 보통 느낌이 게이 같다고 사람들이 피한다던데..

  5. 2011/01/10 21:01

    좋은 말씀입니다. 저역시 현제 교회를 찿고있습니다.그른데 어떤 목사님께서하신 말씀인되요.완전한 교회는없되요.이유는
    내가 거기있기때문이래요.그 말씀 때문에 생각을 많이 했어요...결론은 그래도 교회를찿으면서 기도하면서 조금 거리가 멀어도 살아있는 말씀과 사랑이 충만한교회가 제일 중요한것같에요

  6. 2011/03/24 11:56

    안녕하세요 이번8월부터 보스턴에서 공부하게될꺼같은 예비 대학생인데요! 지금 보스턴에있는 교회들 사이트를 뒤져가며 열심히 찾아보고있는데...ㅜ.ㅜ추천좀해주세요... Mokaholic님은 어느교회로 정하셨어요? 유학생활중에 있는 가장큰 버팀목이되었던 신앙생활을 사는곳을 옮기면서 다시 정하려고하니 무섭고 걱정이 앞서서요... 답글기다릴께요!

  7. 2011/03/24 11:56

    안녕하세요 이번8월부터 보스턴에서 공부하게될꺼같은 예비 대학생인데요! 지금 보스턴에있는 교회들 사이트를 뒤져가며 열심히 찾아보고있는데...ㅜ.ㅜ추천좀해주세요... Mokaholic님은 어느교회로 정하셨어요? 유학생활중에 있는 가장큰 버팀목이되었던 신앙생활을 사는곳을 옮기면서 다시 정하려고하니 무섭고 걱정이 앞서서요... 답글기다릴께요!

에구구구.. 넘 오랫만입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게을러서 10월 내내 한번도 글을 올리지 못했네요.. ㅠㅠ
정말 죄송합니다.. 칼럼지기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부끄럽습니다.. ㅠㅠ

오늘은 오랫 만에 말씀나눔을 해보려고 합니다..
3회 칼럼 때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 교제’ 한 이후로 처음인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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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도 공동체에 관한 겁니다..
성경 통독을 하다가 마음에 팍 와 닿은 말씀입니다..
본문은 학개 1장입니다..
학개 1장 전체이지만 그 중에 9절 말씀을 적겠습니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학 1:9)


학개 당시의 유대민족은 18년 전에 포로생활을 마치고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귀환한 유대인들은 18년이란 기간 동안 성전을 완공하지 못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70년 전에 훼파된 성전은 솔로몬 당시의 영광과 위엄은 사라진 채 황폐된 채로 남아있었습니다.
성전 건축을 하려고 했으나 유대 땅에 살고 있는 이방 민족들의 방해로 인해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전건축이 완성되지 않는 이유를 그런 외부적인 이유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성전 건축이 안 되는 이유는 바로 “각자 자기의 집에 빨랐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보다 내 일을 더 중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자세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 보다는
자신들의 눈앞에 놓인 집을 짓는데 더 열심을 냈던 것입니다..

저는 성도 수 20000명 가까이 되는 사랑의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대학부만 해도 인원이 1500명 정도가 되고 제가 속해있는 대학 1부만 해도 200명이 넘는
정말 큰 공동체 입니다.
이렇게 큰 공동체에서 가장 크게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소외감, 외로움’입니다.
사람들이 워낙 많기에 한명 한명에게 신경 쓰기 힘들고 새로 온 사람들이 적응하려면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지요.
제 주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 소외감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교회에 처음 갔을 때 그 소외감을 느꼈었고요..

이렇게 사람이 많아서인지 처음에는 서로 친해지기 위해 애를 무지하게 많이 썼습니다.
카페에 글도 무지하게 많이 올리고, 수시로 연락하고, 만나서 놀기도 하고...
어느 정도 많은 사람들을 사귀고 친해졌다고 할 만큼 시간이 지났는데도,
저희 또래들 대부분의 마음속에, 또한 저의 마음 한 구석에는 ‘허전함, 공허감’이 있었습니다.
그냥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껴졌었죠.. 그 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이 말씀을 읽을 때 팍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말로는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든다고 하고서는
실제로는 ‘목정환의 공동체’를 만들려고 했구나!’
교회에서 내가 솔직히 중점에 두었던 것은 ‘내 친구 만들기’였습니다.
내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줄 친구를 찾았었고, 내 맘에 드는 친구와 놀러다니고
서로의 친밀감을 강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든다는 멋지고 은혜스러운 핑계 아래,
실제로는 제 자신의 만족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죠.

하나님의 아름다운 공동체는 없었고 공허하게 비어버린 그 자리에는
‘외로움’과 ‘소외감’의 잡초만이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집을 멋지게 지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보다 본질적인 하나님의 성전을
잡초 밭으로 남겨두었기에 그 ‘공허함’이 내 마음 속에 있었던 것이죠.
기도와 말씀에 기초한 공동체를 만들기 전에 먼저 친해져야 한다는 핑계를 가지고
내 만족 채우기에만 바빴던 것입니다.
서울에 와서 가장 원했던 하나님의 일을 같이 할 동역자, 평생친구를 찾는 것보다는
지금 내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을 더 찾았었고, 모여서 기도하며 꿈을 꾸기보다는
같이 놀러다니기를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모습은 어떤지요.. 여러분들이 계신 공동체가 다 있을 것입니다.
교회, 학교, 가정 등등.. 그 공동체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일을 하시고 계십니까?
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들기 보다는
여러분의 공동체를 만들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황무해진 제 마음 속을 발견한 뒤에 저는 다음 절을 읽어 보았습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때는 다리오 왕 이년 유월 이십사일이었더라” (학 1:12~15)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였습니다.(12)
청종(聽從)’이 무엇입니까?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책망하시는 말씀을 듣고 바로 그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은 성전 재건을 촉구하는 학개의 선포 이후에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소홀히 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섰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17, 18세기의 영국에서의 대각성운동도 모든 영국인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경외함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부흥의 역사도 말씀을 들을려고 여기저기서 모인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준 말씀에 대한 사모함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모함뿐만이 아니라 삶으로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 땅에 부흥이 왔음을 봅니다.

이러한 말씀에 대한 경외함을 보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하셨습니까?

먼저 축복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셨느니라.”(13)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임마누엘’의 축복보다 우리에게 더 소중한 축복은 없습니다.
유대 땅으로의 귀환 후에 주위 여러 민족들의 방해 공작에 시달리고,
성전건축을 게을리 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한재의 재앙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들고 지친 삶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이 말씀은
엄청나게 크고 감사한 위로의 말씀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흥분시켰습니다.(14)
한글 번역에는 마음이라고 나온 이 단어는 히브리어 원문에 보면 영(Spirit)이라고 합니다.
또한 '흥분시키시는‘ 것은 '각성시키는 것(stir up)'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 동안 무감각하게 잠들던 백성들의 영을 깨우시며 깨달음을 주셔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열심히 순종하도록 이끄신 것입니다.
그때서야 백성들은 하나님의 깨우심과 인도하심으로 학개를 통해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뜻,
곧 성전 건축의 역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백성들의 영을 깨우신다는 이 말씀이 저에게 제 마음에 팍 와 닿았습니다.
영을 깨운다는 것.. 제가 있는 곳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어 한명 한명의 영적 눈을 뜨게 하시는 것..
제가 있는 공동체에 소망하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철저한 순종..
조금은 나사 풀린 것처럼 살고 있던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공동체가 변화되기를 소망하십니까?
그 공동체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모든 영혼의 영이 깨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 말씀 앞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목마른 사슴과 같이 은혜를 갈망할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들의 공동체에 대한 소망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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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k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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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벽이슬같은 주의 청년입니다..

지난 4월에 저에게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뭐냐고요?

바로 공동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 것이지요.. 공동체..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과 강의가 다 공동체에 관한 얘기였고,
제가 속해있는 많은 공동체 속에서 각각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공동체에 대해 묵상도 하고 설교와 강의 정리했던 것을
다시 정리해서 엄청나게 긴 글을 적었습니다..
같이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와 교제에 대해서 생각해 봤으면 하네요..
길다고 중간에 포기하지 마시고 쭈욱 읽어주세요. 너무 양이 많아서 눈이 아프시더라도 읽어주세요..

=========================================================
성경말씀 먼저 보겠습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1~2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자 살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사람들과 주위 형제 자매들과 함께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모세에게도 아론과 미리암이 있었고, 바울에게도 바나바, 실라 등의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주위에 교회 식구들, 학교 선후배들, 가족들 등등
많은 사람들을 주셨습니다.
이런 사람들과의 연합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함께 하나의 공동체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 교회, 학교, 가정 등등..
그 많은 곳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부르짖는 말 중에 하나가 '하나되자! 서로 사랑하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에도 그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많은 공동체에서
하나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말로만 '하나되자! 하나되자!'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하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동체 내에서의 참된 교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1.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보통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남을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찾기에 바빠들 하지요..
하지만 예수그리스도가 주인 되신 공동체 내에서는
내 자신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고
관계에 투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장 가치 있는 일은 가장 비효율적인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거룩한 비능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위 형제 자매들을 무조건 만나십시오..
같이 밥을 먹던 수다를 떨던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던 공동체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십시오..
그냥 봤을 때는 엄청난 시간의 낭비요, 비효율적인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관계를 맺으려면 시간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서로 몸을 부딪기며 지내는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시간들을 잡으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어야겠지요?
먼저 다가가는 방법 중에 가장 쉬운 것은 '인사'입니다.
또 말을 걸어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같이 '식사'할 수 있겠지요..
같이 밥을 먹는 것은 엄청나게 친해지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무지 중요하지요..
또 같이 '집에 갈'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통해서 상대방과 나와의 사적인 거리를 좁힐 수 있으면
그 상대방과의 관계는 형성되는 것입니다..

2. 자신을 개방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과 서로 알고 지내고 많이 친한 척을 하지만
진정한 친구.. 진정한 동역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내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Open Your Mind!!!

공동체 내에서는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자신의 삶 속에서 역사 하셨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지.. 등등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자신을 좀 더 개방하며 가까이 하는 방법입니다.

간단하게는 요즘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하십시요..
"요즘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해.. 요즘 이런 걸 느껴.." 등등
요즘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사는지 나누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의 약점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낼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공동체는 서로의 약점을 내어 보이기보다는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 주며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어 주는 힘이 있습니다..

3. 좋은 것을 나누십시오..

우리의 말을 통해서 좋은 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자기 안전감과 자기 중요감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즉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사람들을 대할 때 상대방에게 자기 안전감과 자기 중요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자기 안전감이란 상대방과 함께 있으면서 상대방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마음을 뜻합니다..
자기 중요감이란 상대방에게 내가 중요한 존재로 여김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위와 같은 마음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상대방에게 (+)되는 말을 해 주어야 합니다.
무조건 비난이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장점을 살려줄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말로써 좋은 것들을 나누며 서로를 칭찬해 줄 줄 알아야 하지요..

또한 좋은 경험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경험했던 중요한 일들.. 하나님의 역사하심들.. 등등
여러 가지를 나눈다면 서로의 믿음을 강하게 해 줄 수 있고
여러분의 경험 속에 상대방을 포함시키는 일일 것입니다..

4. 갈등을 넘어서야 합니다..

인간관계에는 보통 주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환상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다가 점점 그 환상이 깨지면서
심할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대한 환멸을 느끼기도 하지요..
우리가 사람에게 실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모두다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마음.. 공동체의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요?
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당사자들끼리 기도하며 해결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필요할 것입니다..

5.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위의 네 가지는 세상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다섯 번째 영적 교제는 우리 믿는 사람들만의 특권입니다..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죄를 고백하는 관계여야 합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이 말씀처럼 서로의 죄를 위해서 서로 중보기도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너무 가볍게 여기지 않고
솔직히 서로에게 고백하며 기도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담대한 모습이 필요하겠죠..

그리고 말씀을 나누는 교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듯이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서로 모여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나눌 수 있는 교제의 모습..
그 모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교제의 모습일 것입니다..

또한 함께 기도하는 관계여야 합니다. 서로의 죄를 위해서 기도해 준 것처럼..
서로의 어려운 일, 아픔 등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할 수 있는 공동체야말로
참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나인성의 과부 이야기를 아시지요?
자기 아들이 죽어서 슬퍼하고 있는 과부를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셨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힘들어하는 자를 긍휼히 여길 수 있는 마음.. 또한 그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꿈을 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빽을 가지고 있는 거룩한 인맥에 올라있습니다.
세상에서 학연, 지연 등등 많은 인맥들이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든든한 빽으로 모시고 있는(?) '거룩한 인맥'에 속해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같이 꿈을 꾸며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공동체..
그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공동체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또한 우리를 특별한 뜻으로 만나게 하셨습니다.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닌 계획에 의한 만남.. 같은 주님을 섬기는 지체들..
우리에게 공동체를 주시고 서로 연합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합니다..
위에 적은 몇 가지들을 생각해 보시고 참된 교회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
이 칼럼에 오신 여러분들과 저도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비록 사이버 상이라 서로의 얼굴을 잘 모르고 직접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이렇게 같은 공동체 안에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서로를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제 칼럼에 가입해 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들은 저에게 소중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 해주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Mok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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