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16 내 공동체..
  2. 2008/08/31 나그네를 대접하라.. (2)
요즘 예배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한다.
예배가 살지 않기에 삶도 뭔가 제대로 돌지 않고 있다.
좀 갑갑하다..
아직도 교회가 내 공동체라는 생각이 안든다.. 그래서 붕 뜨는거 같기도 하다..

'내 공동체'라는 생각은 언제쯤부터 드는 것일까?
막상 생각해보려니 잘 기억이 안난다.. @.@

새로남교회를 다닐때는 처음에 알게되었던 병우와 친해지고 난 뒤 언젠가 부터였던 것 같다..
임원도 아니었는데 임원들과 친해져서 교회 행사 준비를 하면서 공동체라는 것을 생각해 봤던 것 같다.
물론 고등부에 가서는 찬양팀 예나리를 하면서 내 공동체라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됐고..

사랑의교회에서는 세가지 방향(?)을 통해서였다.
GBS를 통해서 아름누나의 케어가 매우 고마웠고, 80또래 형들을 알면서 행정팀을 하게 된 것, 그리고 또래 모임..
이러면서 내 공동체라고 생각하게 된 듯 싶다.

북경 21세기 교회에서는 교회 자체가 내 공동체라는 생각 보다는 SR 사역팀이 내 공동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만큼 시간도 짧았었고..

메릴랜드에서는 다니엘속 소그룹 통해서 내 공동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근데, 소그룹이 KBS 학교 성경공부모임과 겹쳐있었기 때문에 조금 애매했다..


결국 친한 사람을 만나고, 사역을 하면서 내 공동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나보다..
그런데 이런게 옳은 것일까? 물론 옳다 그르다를 꼭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왠지 내가 무언가를 해서 사람들에게 내가 드러나야(?) 그 공동체 안에서 내 필요성을 느끼고 그때 내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기분이 든다.
즉, '내 공동체' = '내가 소유한' or '내가 control(?)할 수 있는' 공동체 이렇게 되는 것이다..
(너무 나쁘게 해석하나?)


보스턴에 와서 바쁘다는 핑계이기도 했지만, 내 스스로를 시험(?)해보고자 일부러 지난 1년동안 아무 섬김의 자리에 있지 않았었다. 그냥 평범한 조원으로 공동체에 있으면서도 내 공동체라고 느끼며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꽝이다. 내 공동체라고 느끼기는 커녕, 예배 시간에 깊은 자리로 나아가기도 힘들었다. 오히려 1년만에 갔던 대학1부 예배시간이 훨씬 더 좋고 감사했었다.


간사 시절에 항상 고민했던 것.. 처음 온 사람을 어떻게 적응시켜야 하는가..
어찌보면 지난 1년간 스스로에게 적용하며 실험해봤던 건데..
흠.. 일반화 시킬수는 없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뭔가 사역을 해야 내 공동체라고 느끼나보다.

그냥 소그룹 모임에서 조용히 있으면서도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하는 뭔가 이상적인(?) 그런 사람은 될 수 없을라나.. 섬김의 자리에서 사역을 하는 내 마음에는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지 않고 싶지만 그런게 사실인지라.. ㅠ.ㅠ


내 공동체라는 생각이 안 들어서일까..
나랑 워낙에 맞지 않는 공동체일까..
내가 사랑의교회 대학부 스타일에 너무 젖어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1년 내내 했다. 뭔가 갑갑한.. 아쉬운..

몇주뒤면 이제 첫 섬김의 자리에 서게 된다. 오랜만에 하는 리더의 자리..
이런 가운데 과연 리더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대학부와는 너무 다른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기대하는 것도 달라져야 하고 요구하는 것도 달라야 하고,
함께 해야 하는 것도 달라야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

그래서 기도를 해야하는데 문제가.. 예배가 회복되지 않아서 기도도 잘 안된다.. 휴..


공동체.. 공동체.. 공동체..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항상 고민이다..

아.. 나의 사랑 나의 고민.. 나의 교회..
Posted by Mok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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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를 고르는 과정 중에 다른 것 보다 나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지난 8년간의 사랑의교회 대학부 생활에 대한 반성이었다. 바로 새로 교회를 찾아 온 사람들에게 대한 사랑과 관심을 쏟지 못했다는 것이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라는 속담 만큼이나 내 지난 모습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은 없을 것 같다. 개구리로 너무 오래 지내다보니 올챙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오는지 기억도 안났다. 이제서야 오랜만에 다시 올챙이로 돌아가고 나니 개구리 때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게 된다.

  교회에 처음 온다는 것.. 기존에 믿던 사람이던지, 새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던지 상관없이 모두에게 굉장한 어색함과 생소함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도 새가족 모임만 가면 왠지 모르게 예배 순서와 모든 과정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 사람이 아직 '공동체의 지체'가 되지 못한 채 공동체 모임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거리감을 최소화 시키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하는 사람들은 바로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들을 잘 대해줘야 하는가? 이들이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속해 있지 못하고 아직 지체의 일부가 되지 못한채 몸과 영혼이 쉴 곳을 아직 찾지 못한 나그네인 것이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출 23: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신 10:19)

  보통 우리는 예전에 공동체를 찾아 돌아다니던 예전 기억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당시 온갖 어색함과 여러 교회 결정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이곳 저곳을 다니던 경험은 모두에게 있다. 설령 친한 친구의 손에 이끌려 왔다고 해도 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 사람에게서 거리감을 느끼는 묘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랬던 우리의 경험이 나그네를 잘 대해줘야 하는 이유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 3:2)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딛 1:8)


  또한, 공동체 리더십에 대해서는 그 조건에 나그네를 대접해야 함이 명시되어 있다. 흔히들 생각하는 리더십의 조건에 해당하는 거룩, 절제 등과 같이 포함되는 것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일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조건이다. 흔히 공동체에서는 새로온 사람들을 담당하는 부서나 사람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인지 새로온 사람들에게 안내하고 인사하는 것이 맡은 자들의 일인 것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공동체의 리더십이라면 모두에게 나그네를 대접해야 하는 역할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나그네를 대접할때는 나그네의 사정을 생각하며 사랑을 담아 대접을 해야한다. 최근 3개의 교회를 다녀보며 느낀 것은 나그네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 가가 사람마다 확연히 달랐다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짜여진 프로그램이나 좋은 사람들이 아닌, '한 영혼을 아끼는 사랑의 마음'이다. 흔히들 공동체 크기가 작으면 한 영혼에 대한 마음이 커서 새로온 사람들을 잘 반겨주고, 크기가 크면 잘 반겨주기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맡은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전 4:2)고 하신 것처럼. 크기와 상관 없이 '내' 태도가 어떻느냐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이다.

  두가지 매우 다른 경험을 했다. 교회가 모두 조금 멀리있기 때문에 교회를 가려면 ride가 필요하다. A교회를 가는데 ride 부탁을 조금 늦게 새가족 담당 리더에게 했다. 그 리더가 ride 담당자를 알아보니 오늘 사정이 있어서 교회를 못오게 됐다고 한다. 결국 그 리더는 한참을 돌아서 우리를 pick-up하러 와주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우리 때문에 예배에 그 리더도 한참 늦게 되었지만, 매우 기쁘게 섬겨주는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반대로 B교회를 갈 때의 일이었다. ride 약속을 잡고 기다리는데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연락을 했더니, 우리를 못보고 지나쳤다고 한다. 고맙게도 돌아서 다시 우리에게로 와 줬는데, van에 타려고 하는데 숨이 멎는 줄 알았다. van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싸~한 분위기와, 우리가 처음 온 사람인 줄 분명히 아는 driver도 우리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어서 오세요'라는 말도 없이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ㅡ.ㅡ;

  이것이 단순히 교회 크기의 문제일까? 이 두 교회는 잘 알려진 큰 교회이다. 공동체의 크기의 문제가 아닌 영혼에 대한 사랑의 문제이다.



  새로 온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실 입구를 들어가는 길목에서의 반가운 인사와 안내가 너무나도 이들에게는 고마운 행동이 된다. 예배실을 이동해야 하는 것도 공동체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일 수 있지만, 처음 온 사람들에게는 큰 일이고, 예배 끝나자마자 눈치 채고 안내해주는 사람이 가장 고마운 사람이 된다. 옆에서 멍하니 서있지 않도록 이야기를 붙여주고, 인사를 나눠주는 사람들이야 말로 그 공동체에 대한 첫인상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인 것이다.

  많은 반성을 했다. 리더십으로 섬겼던 지난 시간들 가운데 나는 과연 얼마나 새신자들에게 웃음으로 인사를 했으며,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섬겼는지 돌이켜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내가 맡은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가족을 담당한 사람들을 먼저 찾기에 바빴던 것이 사실이다.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원한다. 21세기의 나그네는 공동체를 찾아 헤메는 이들이 아닐까 싶다..




Posted by Mok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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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31 21:22

    이거 퍼가요 오빠...^^ 으흐-나도 올챙이 되는 건 두렵다요.ㅠㅠ흐엉.

    • 2008/08/31 23:26

      윤일아..^^ 두번 세번 느낀거지만..
      네가 맡은 사역.. 너무너무나 중요한거다..^^

      예수님이 잠깐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치유의 권능을 베푸신 것처럼.. 설령 대학부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사랑을 쏟아 부어줘야 하는거 같아..

      많은 은사와 재능 가진 윤희이기 때문에 잘 할꺼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윤희 혼자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 윤희가 간사로서 다른 간사들, 엘더들, 리더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깨우치는 더 중요한 역할도 있는거 같네..

      새가족으로 새 교회를 가서 인사할 때마다 윤희 생각 많이 났어..^^ 지혜와 온유함이 넘치는 새가족 간사 되길 진심으로 기도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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